771년 완성된 18.9t 범종, 올해도 12차례 타종
소리·진동·맥놀이 기록해 과거 데이터와 비교
지난해 조사선 30년간 구조적 변화 없어…2029년까지 매년 점검
| 지난 15일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종각에서 열린 2026년 타음조사 공개회에서 타종자들이 당목으로 성덕대왕신종을 울리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
거대한 통나무 당목이 천천히 종을 향해 움직였다.
‘둥.’
한 번 울린 소리는 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낮고 긴 울림이 이어지면서 소리가 커졌다 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반복했다.
이날 성덕대왕신종은 모두 12차례 울렸다.
천년 넘은 종소리를 관람객에게 들려주기 위한 공연만은 아니었다. 종이 내는 소리와 진동을 기록해 내부 구조에 변화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학조사였다.
사람으로 치면 매년 받는 건강검진과 비슷하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해부터 2029년까지 5년에 걸쳐 성덕대왕신종을 정기적으로 울리고 음향·진동 특성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올해는 두 번째 조사다.
|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공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종각을 가득 메운 가운데 타종이 진행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신종이 완성된 771년을 기념해 771명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
작년에 이상 없다는데, 왜 올해 또 쳤을까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혜공왕 7년인 771년 완성됐다.
높이 약 3.6m, 무게 18.9t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 범종이다. 흔히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완성 직후 성덕왕의 원찰인 봉덕사에 걸렸고 이후 영묘사를 거쳐 경주읍성 남문 밖 종각에서 시각을 알리는 종으로 사용됐다. 1915년 옛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1975년 현재의 국립경주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지금 자리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대로 울릴 수 있는 종이 아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파손 우려 때문에 1992년 정기 타종을 중단했다.
이후 종을 울린 것은 주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 때였다.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에 타음조사가 실시됐다. 지난해에는 다시 2025~2029년 장기 정기조사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성적표는 올해 1월 나왔다.
2025년 조사에서 성덕대왕신종의 고유주파수는 과거 측정값과 비교해 ±0.1% 이내의 차이를 보였다. 박물관은 기온과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했다.
종소리의 특징인 ‘맥놀이’도 과거와 같은 패턴과 주기를 유지했다. 초고해상도 촬영을 통한 표면 검사에서도 특이한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박물관은 이를 토대로 1996년 첫 진동·음향조사 이후 약 30년 동안 성덕대왕신종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괜찮다고 확인한 종을 올해 또 울린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변화’를 찾는 데 있다.
한 번 측정한 숫자보다 같은 방식으로 해마다 데이터를 쌓아 비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난해와 올해, 내년의 고유주파수와 진동 형태가 계속 같다면 안정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반대로 아주 작은 변화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구조 변화의 신호일 가능성도 살펴볼 수 있다.
| 성덕대왕신종을 배경으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타종 기념 공연 ‘모두의 노래 아리랑’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타음조사 공개회는 ‘치유’를 주제로 열렸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
귀에는 ‘울림’, 연구자에게는 데이터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맥놀이’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겹치면서 음량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현상이다.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리가 한 번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멀어졌다 다시 다가오는 듯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올해 타음조사에서도 연구진은 고유주파수와 진동 특성, 맥놀이 등을 확인하기 위해 12차례 타종을 진행했다.
일반 관람객에게는 “천년 전 신라의 종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경험이지만, 연구자에게는 각각의 타종이 비교할 수 있는 측정값으로 남는다.
올해 기록된 자료도 지난해와 1996년 이후 축적된 조사 결과와 비교해 장기적인 변화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이게 된다.
왜 하필 771명이었을까
올해 공개회의 참가 인원에도 숫자가 하나 숨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사전 추첨을 통해 771명을 선정했다.
종이 완성된 서기 771년을 그대로 가져온 숫자다. 공개회는 15일 오후 7시부터 8시15분까지 열렸다.
지난해 첫 공개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신청자가 약 3천800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771명을 추첨했다. 2003년 이후 22년 만에 일반인이 성덕대왕신종의 타종을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올해 공개회 주제는 ‘치유’였다.
현장에서는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인사와 주낙영 경주시장의 축사,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해설이 이어졌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은 ‘생소병주-수룡음’과 ‘모두의 노래 아리랑’을 연주했다.
종각을 둘러싼 관람객들은 타종 순간마다 휴대전화를 들어 장면을 기록했다.
관객 앞에서는 몇 초 동안 이어지는 종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동시에 천년 넘은 문화유산의 상태를 기록하는 자료가 됐다.
| 초승달이 뜬 15일 저녁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종각. 박물관은 지난해부터 2029년까지 매년 신종의 음향과 진동 특성을 측정해 장기적인 변화를 살피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
천년을 버텼지만 지금도 야외에 있다
성덕대왕신종이 1천250년 넘게 남았다고 해서 앞으로의 보존까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신종은 야외 종각에 있다.
태풍과 지진 같은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비바람과 습도, 미세먼지, 산성비, 계절에 따른 큰 온도 차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5년간 정기 타음조사에 나선 이유도 이런 환경 속에서 종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장기간 지켜보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지난해 조사에서도 현재까지 특별한 구조적 이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야외 노출 환경을 고려하면 지속적인 관리와 안정적인 전시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사를 통해 축적된 자료는 향후 전시환경 개선과 성덕대왕신종을 위한 별도 전시공간을 검토하는 기초자료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15일 밤 마지막 타종이 끝나면서 성덕대왕신종은 다시 조용해졌다.
올해 들은 12번의 종소리는 사라졌지만 소리의 주파수와 진동은 데이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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