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남쪽에 연못 2곳·우물 1곳…왕경 사찰서 보기 드문 배치
직경 1.5m·깊이 3.67m 우물서 ‘大龍王’ 적힌 목간 출토
육상동물·새·물고기 뼈와 복숭아씨까지 함께 나와
연구진 “일반 식수시설보다 제의 관련 시설 가능성”
경주 인왕동사지의 한 우물에서 나무쪽 하나가 발견됐다.
거기에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大龍王.
‘대룡왕’이다.
그런데 우물 안에서 나온 것은 이 목간 하나뿐이 아니었다. 여러 종류의 육상동물과 새, 물고기의 뼈가 나왔고 복숭아씨도 함께 발견됐다.
물을 길어 마시던 평범한 우물이었다고 보기에는 조금 낯선 조합이다.
연구자들이 인왕동사지의 이 우물을 사찰 내 의례나 제의와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다.
연못 두 곳 옆에 자리 잡은 우물
인왕동사지에는 금당과 동·서 쌍탑, 강당과 회랑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역 남쪽, 십자형 건물지 아래쪽에서는 연못 2기와 우물 1기가 함께 확인됐다.
신라 왕경의 다른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배치다. 학술대회 자료집도 연못과 우물을 사역 남쪽에 함께 둔 점을 인왕동사지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발굴조사에서 우물에는 ‘우물10’이라는 번호가 붙었다.
동쪽 연못 바로 옆에 자리한 석축우물이다. 평면은 원형이며 직경 약 1.5m, 깊이 약 3.67m다.
돌을 불규칙하게 층층이 쌓아 벽을 만들었지만, 안쪽에는 석재의 평평한 면을 맞춰 비교적 정연하게 시공했다. 우물 주변에서는 원형과 방형의 석축 흔적도 함께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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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인왕동사지 전체 유구 배치도. 금당과 동·서 석탑을 중심으로 한 사찰 건물과 함께 사역 남쪽에 연못과 우물 등 물 관련 시설이 배치돼 있다. 2026 경주 인왕동사지 학술대회 자료집 |
전체 유구 배치도를 보면 우물은 금당이나 탑과 떨어진 사역 남동쪽에 놓여 있다. 바로 옆에는 동쪽 연못이 있고, 조금 떨어져 서쪽 연못이 자리한다.
금당과 쌍탑이 예불공간의 중심이라면 남쪽에는 물과 관련된 별도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던 셈이다.
절보다 먼저 있었던 우물이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우물의 시작 시점이다.
앞선 2편에서 살펴봤듯 인왕동사지는 한 번에 사찰이 조성된 공간이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유구를 크게 제1기와 제2기, 본격적인 사찰이 들어선 제3기로 구분한다.
우물10은 제2기 유구에 포함된다.
즉 금당과 쌍탑을 중심으로 한 사찰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이 자리에 우물이 있었다는 뜻이다.
제2기에서 제3기로 공간이 크게 바뀌면서 기존 건물 대부분은 새로 지어졌다.
그런데 모든 시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연구자는 사역 동쪽의 담장과 우물10, 동쪽 연못, 서회랑의 일부 공간은 앞선 시설을 그대로 유지해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새로운 사찰을 만들면서 오래된 건물은 걷어냈지만, 물을 이용하던 일부 시설은 남겨둔 셈이다.
왜였을까.
그 질문에 단서를 주는 것이 우물 속에서 나온 유물이다.
‘大龍王’ 세 글자가 적힌 나무쪽
우물10 내부에서는 목간이 발견됐다.
가느다란 나무쪽에는 먹으로 ‘大龍王’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목간은 당시 사람들이 종이 대신 또는 특정 용도로 글씨를 적어 사용한 나무 조각이다. 인왕동사지의 이 목간은 특히 ‘대룡왕’이라는 문자가 남았다는 점 때문에 우물의 성격을 살피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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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동사지 우물10 평면도와 출토자료. 우물에서는 ‘大龍王’이라는 글자가 적힌 목간과 함께 육상동물·조류·어류의 뼈, 복숭아씨 등이 발견됐다. 2026 경주 인왕동사지 학술대회 자료집 |
그림 20에는 우물 평면과 함께 목간이 실려 있다.
같은 우물에서는 목간 외에도 다양한 유기물이 나왔다.
자료집에 따르면 육상동물과 조류, 어류의 뼈, 그리고 복숭아씨가 함께 출토됐다.
일상생활 과정에서 우연히 들어간 것인지, 의도적으로 넣은 것인지 개별 유물의 성격을 모두 확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大龍王’ 목간까지 한 우물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이곳의 용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연구자는 이 같은 출토 양상을 근거로 우물10이 일반적인 식수시설이라기보다 제의와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우물에서 나온 자료를 통해 신라의 우물 제의와 물에 관한 신앙, 의례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만 길었던 곳이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
발굴 당시의 우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둥근 우물 하나만 남은 모습과도 조금 다르다.
석축 주위로 여러 시설 흔적이 겹쳐 있고, 동쪽 연못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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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인왕동사지에서 발굴된 우물10. 동쪽 연못에 인접한 석축우물로 직경 약 1.5m, 깊이 약 3.67m 규모다. 2026 경주 인왕동사지 학술대회 자료집 |
발굴사진을 보면 원형 석축 안쪽에 물이 고여 있고 주변으로 다른 석렬과 유구들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실제 어떤 의식이 진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룡왕’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해서 특정한 제사의 방식이나 목적을 곧바로 정할 수도 없다. 비를 빌었는지, 물과 관련한 다른 의례를 치렀는지 역시 현재 자료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렵다.
확인되는 사실은 세 가지다.
사찰 남쪽에 연못과 우물이 함께 있었다. 이 우물은 본격적인 사찰 조성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우물 안에서는 ‘大龍王’ 목간과 여러 동물뼈, 복숭아씨가 나왔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우물10은 인왕동사지에서 가장 특이한 공간 가운데 하나가 됐다.
사찰은 금당과 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절터를 보면 먼저 탑과 금당을 찾기 쉽다.
하지만 인왕동사지 발굴은 당시 사찰의 공간이 불상을 모시고 예불을 올리는 곳만으로 구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역 한쪽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옆에는 깊이 3.67m의 우물이 있었다. 그 안에 누군가는 ‘大龍王’이라고 쓴 나무쪽을 남겼다.
천년이 넘은 뒤 나무쪽과 뼈, 씨앗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공간이 단순한 급수시설이었는지, 다른 의미가 부여된 장소였는지를 묻게 만들었다.
아직 답은 모두 나오지 않았다.
인왕동사지에는 또 다른 퍼즐도 남아 있다.
무너진 두 석탑에는 신라 불교의 수호신인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여러 조각은 지금 경주가 아니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다음 편에서는 흩어진 팔부중상이 어떻게 인왕동사지 쌍탑의 조각으로 확인됐고, 무너진 두 탑의 원래 모습을 어떻게 다시 맞춰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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