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호분·미추왕릉·황남대총·천마총이 밤마다 거대한 스크린으로
27일까지 매일 오후 7시30분~9시30분…황리단길서 걸어서 이어지는 밤 산책
| 경주 대릉원 고분을 배경으로 신라 황금문화를 재해석한 미디어아트가 펼쳐지고 있다. 경주시 제공 |
해가 지자 대릉원의 둥근 봉분 위로 거대한 황금신발 한 쌍이 떠올랐다.
낮에는 잔디로 덮인 고분이지만 밤이 되면 모습이 달라진다. 푸른빛이 능선을 따라 흐르고, 황금빛 유물과 신라의 이야기가 봉분 위에 펼쳐진다. 관람객들은 고분을 바라보다 하나둘 휴대전화를 들어 장면을 담는다.
경주 대릉원에서 지난 4일 시작된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경주 대릉원’의 밤 풍경이다.
행사는 오는 27일까지 24일간 이어진다. 매일 오후 7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대릉원 곳곳이 빛과 영상으로 바뀐다.
올해 주제는 ‘대릉원, 영원-천년의 시간을 넘어 영원으로’다.
눈여겨볼 것은 따로 세운 대형 스크린이 아니라 실제 고분이 영상의 무대가 된다는 점이다.
90호분에는 경주 분지의 형성과 신라의 탄생이 펼쳐진다. 미추왕릉에서는 박·석·김으로 이어지는 신라 왕조의 기틀을 보여준다.
황남대총에는 신라가 누린 꿈과 영광을 담았고, 천마총에서는 찬란했던 황금문화를 3D 그래픽과 영상으로 다시 풀어낸다.
지난 4일 경주 대릉원 90호분 앞에서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경주 대릉원’ 개막 공연이 열리고 있다. 경주시 제공고분마다 같은 영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각 유적에 얽힌 이야기를 달리 입힌 셈이다.
| 경주 대릉원 90호분 앞에서 개막 공연이 열리고 있다. 경주시 제공 |
개막일인 지난 4일에는 90호분 앞에 무대가 놓였다. 정순임 명창의 창을 시작으로 선덕여왕과 김유신, 문무왕, 원효대사 등을 등장시킨 판타지 서사극 ‘천년의 잠에서 깨어난 빛’이 공연됐다.
무대 뒤에는 실제 신라 고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연과 함께 봉분 위로 영상이 번지면서 무대와 유적의 경계도 흐려졌다.
대릉원 입구에서 중앙광장까지 이어지는 길도 평소와 다르다. 반딧불을 닮은 조명과 레이저, 안개를 활용한 ‘빛의 숲’이 만들어졌다.
중앙광장에서는 야간 도슨트 투어 ‘아, 신라의 밤이여’를 비롯해 빛의 소망볼 작성, LED 황금 왕관 만들기, UV 야광 유물 발굴 등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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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리단길 뒤로 대릉원 고분군이 이어져 있다. 황리단길에서 식사나 카페를 이용한 뒤 걸어서 대릉원 미디어아트를 관람할 수 있다. 경주시 제공 |
대릉원의 밤을 즐기기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위치다.
황리단길과 대릉원은 바로 맞닿아 있다. 황리단길에서 저녁을 먹거나 카페에 들렀다가 차를 다시 움직이지 않고 걸어서 대릉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해가 남아 있을 때 황리단길을 둘러보고 오후 7시30분에 맞춰 대릉원으로 이동하면 된다. 낮에 바라봤던 고분을 몇 시간 뒤 빛과 영상이 입혀진 모습으로 다시 보는 것도 이 시기만 가능한 풍경이다.
미디어아트를 보고 난 뒤에는 첨성대 방향으로 걸음을 이어도 된다. 경주 도심의 주요 관광지가 가까이 붙어 있어 황리단길에서 대릉원, 첨성대 일대로 이어지는 밤 산책 동선을 짜기 어렵지 않다.
화려한 영상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조금 아깝다.
황남대총은 왜 그렇게 큰지, 천마총에서는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미추왕릉은 누구의 무덤으로 전해지는지 알고 보면 고분 위를 지나가는 빛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번 행사는 새로운 유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던 대릉원을 밤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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