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엔 CANDU·OPR1000 한자리에…외국 기술 도입과 국산화의 시간
OPR1000 경험 딛고 APR1400 개발…UAE 바라카 4기 이어 미국 시장으로
한미 대형원전 8기 추진…APR1400 2기 실제 건설·국내 공급망 참여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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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전경. 왼쪽에는 CANDU 계열 중수로인 월성원전, 오른쪽에는 OPR1000을 적용한 신월성 1·2호기가 자리하고 있다. 한수원 제공 |
경주 동해안의 월성원자력본부를 바다 건너 바라보면 한국 원전산업의 서로 다른 시간이 한곳에 겹쳐 보인다.
월성 1~4호기는 캐나다에서 도입한 CANDU 계열의 가압중수로다. 그 옆에는 둥근 격납건물이 눈에 띄는 신월성 1·2호기가 서 있다. 신월성은 1000MW급 가압경수로인 OPR1000을 적용했다. 월성 1호기는 현재 영구정지 상태지만 월성 2~4호기와 신월성 1·2호기는 같은 월성원자력본부 안에서 서로 다른 원자로 기술의 역사를 보여준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월성의 CANDU 중수로가 APR1400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APR1400과 직접 이어지는 쪽은 같은 월성본부의 신월성 1·2호기, 즉 OPR10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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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월성 1·2호기는 1000MW급 가압경수로 OPR1000을 적용했다. 한수원 제공 |
신월성 1호기는 2012년, 2호기는 2015년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APR1400이 OPR1000의 설계·건설·운영·정비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됐다고 설명한다. 발전용량은 1000MW급에서 1400MW급으로 커졌고 안전설계도 한 단계 발전했다.
그 결과물이 APR1400이다.
국내에서 APR1400을 처음 적용한 원전은 지금의 새울 1·2호기, 옛 신고리 3·4호기다. 새울 1호기는 2016년, 2호기는 2019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두 기 모두 1400MW급 APR14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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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1400 노형인 새울 1·2호기 전경. 한수원 제공 |
흥미로운 점은 APR1400의 해외 진출 계약이 국내 첫 상업운전보다 먼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국 컨소시엄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 APR1400 4기를 짓는 계약을 따냈다. 당시 건설 중이던 새울 1·2호기가 바라카의 참조발전소가 됐다. 바라카 1호기는 2021년, 2호기는 2022년, 3호기는 2023년, 마지막 4호기는 2024년 9월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한국이 개발한 대형 원전 노형이 해외에서 4기 모두 실제 전력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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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AE 바라카 원전 전경. 한국이 처음 해외에 수출한 원전으로 APR1400이 적용됐다. 한수원 제공 |
미국 시장을 향한 준비도 이미 진행돼 있었다.
한전과 한수원은 APR1400에 대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신청했고, NRC는 2019년 인증 절차를 마쳤다. 설계인증은 특정 부지에 원전을 짓는 허가와는 다르지만, 미국에서 해당 노형을 사용해 건설·운영 허가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2026년 10월, APR1400의 미국 진출이 다시 구체적인 단계로 올라섰다.
한·미 양국은 한미전략투자기금 최대 1200억달러를 활용해 미국에 대형원전 8기를 추진하는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 대상은 한국형 APR1400 2기와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6기다. APR1400의 미국 건설을 제한했던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기존 합의도 개정하기로 했다.
다만 ‘8기’라는 숫자가 곧바로 착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원자력학회도 지난 1일 이번 합의를 환영하면서 동시에 조건을 달았다. APR1400 2기가 실제 미국 건설 실적으로 이어져야 하고, AP1000 사업에서도 국내 기업이 주기기와 대형 단조품, 장납기 기자재, 모듈 제작 등 공급망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재원이 들어가는 만큼 사업성도 따져야 한다고 했다. 원전을 지을 부지와 전력 수요, 송전망 연결은 물론 투자금 회수와 손실 분담, 장기 전력구매계약 같은 조건까지 확인한 뒤 사업성이 있는 프로젝트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산업통상부 역시 프레임워크 발표 직후 한전·한수원 등으로 구성된 ‘팀코리아’를 중심으로 APR1400 미국 사업의 기본설계와 인허가, 설계·조달·건설(EPC), 시운전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는 27~29일 경주에서 열리는 ‘2026 국제 원자력수출 및 안전 콘펙스’에는 미국 원전업계 바이어를 초청해 국내 기업과 구매상담과 비즈니스 미팅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래서 미국 원전 사업은 경주에도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수원 본사가 경주에 있고, 월성원자력본부에는 외국 기술을 받아들이던 시기의 CANDU와 국내 기술로 발전시킨 OPR1000이 한 공간에 서 있다. 이제 그 OPR1000에서 축적한 경험을 딛고 성장한 APR1400이 바라카를 거쳐 미국 시장을 향하고 있다.
월성의 바다에서 바라본 한국 원전의 시간은 그렇게 길어졌다.
기술을 들여와 발전소를 짓던 나라에서 자체 노형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나라로. 이제 남은 것은 미국에 적힌 ‘APR1400 2기’라는 숫자를 실제 원전 건설과 국내 기업의 일감으로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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