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T가 농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냐…평화적 이용 권리 인정
한미 원자력협정이 현실적 관문…2015년 개정 때도 포괄적 동의 못 받아
지난해 경주 한미 정상회담 뒤 변화…美 ‘한국 민간 농축으로 가는 절차’ 지지
“원전까지 수출하는 나라가 우라늄 농축은 왜 못 할까.”
1편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프랑스 오라노와 우라늄 농축 장기협력에 나선 배경을 따라가다 남은 질문이다.
답부터 말하면 조금 복잡하다.
한국에 원전을 만들 기술이 없어서도 아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한국의 우라늄 농축을 무조건 금지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한국이 지금까지 상업용 우라늄 농축을 하지 못한 데에는 한미 원자력협정과 국제 비확산 체제, 경제성과 산업적 판단이 함께 얽혀 있다.
| 임갑수 한미원자력협력 정부대표가 지난 1월 9일 외교부에서 한미원자력협력 범정부협의체(TF) 첫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NPT 가입국이면 우라늄 농축을 못 한다?
먼저 가장 많이 생기는 오해부터 풀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NPT 가입국이다. 하지만 NPT는 비핵보유국이 평화적인 목적으로 원자력을 연구하고 생산·이용할 권리를 인정한다.
NPT 제4조에는 조약의 어떠한 내용도 평화적인 원자력 연구·생산·이용에 관한 당사국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대신 조건이 따른다. 핵물질이 핵무기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통해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NPT 가입국인 한국은 우라늄을 농축하면 안 된다’는 설명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까지 농축하지 않았을까.
문제는 ‘농축’이 가진 두 얼굴
천연우라늄에서 핵분열에 주로 이용되는 우라늄-235의 비율은 약 0.7%다.
국내 대부분 원전인 경수로에서는 이 비율을 높인 저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한다. IAEA는 우라늄-235 농도가 20% 미만이면 저농축우라늄(LEU), 20% 이상이면 고농축우라늄(HEU)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인 발전용 원자로 연료는 대부분 5% 미만이다.
바로 이 때문에 농축은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보는 기술이다.
발전용 핵연료를 만드는 데 필요하지만, 농축도를 계속 높일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은 핵확산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농축시설은 일반적인 원전 설비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국제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한국의 문제가 여기서 미국과 연결된다.
| 동경지 그래픽 |
“미국이 허락해야 한다”는 말, 어디까지 맞을까
한국과 미국은 1950년대부터 원자력 분야에서 협력했고 현재는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이른바 ‘123협정’을 적용받고 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에서 이전됐거나 미국의 원자력 협력 의무가 붙어 있는 핵물질을 다시 농축하거나 재처리하려면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 국무부 역시 2015년 협정에 농축과 재처리에 관한 양국의 동의권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우라늄에 대해 무조건적인 통제권을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한국의 우라늄 농축 문제는 NPT 하나, 한미 원자력협정 하나만으로 “된다,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핵물질과 기술의 출처, 국제적인 원자력 공급체계, IAEA 안전조치와 비확산 정책 등이 함께 작동한다.
다만 한국 원전산업이 오랫동안 미국과 원자력 기술·물질 협력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미국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상업용 농축으로 가는 현실적인 핵심 관문인 것은 분명하다.
2015년에도 농축 문제가 협상의 쟁점이었다
지금의 한미 원자력협정은 2015년 전면 개정됐다.
당시 한국은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주요 협상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그 결과 20% 미만 저농축 문제를 앞으로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는 길은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이 필요에 따라 독자적으로 상업 농축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이 미리 포괄적인 동의를 해준 것은 아니었다. 당시 외교부 자료도 저농축에 대해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른 추진경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열린 것도 아니었던 셈이다.
그 상태가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문구가 ‘경주’에서 달라졌다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지난해였다.
2025년 10월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Joint Fact Sheet)에는 원자력 분야에서 상당히 눈에 띄는 내용이 들어갔다.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국 법률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질 절차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이 한미 정상 간 합의 문서에 명시된 것이다.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롭다. 한국 원전의 농축우라늄을 조달하는 한수원 본사가 있는 곳도 경주이고, 한국이 민간 농축으로 갈 수 있는 외교적 전환점이 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곳도 경주였다.
| 정연두 외교부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지난 6월 2일 서울 외교부에서 면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2026년, 이제 실제 협상이 시작됐다
정상 간 합의는 올해 정부 협상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지난 1월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부,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한수원 등이 참여하는 ‘한미원자력협력 범정부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목표도 분명하게 적었다.
‘평화적·상업적 목적의 농축·재처리 역량 확보’다.
한미 양국은 지난 6월2~3일 서울에서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의 원자력 분야 후속협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한국 측에서는 국가안보실과 외교부를 비롯한 범정부 대표단이, 미국에서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부·에너지부 등이 참여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5일에도 농축·재처리를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외교과제라고 밝히며 고위급 협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사오던 농축서비스를 언젠가는 국내에서 할 수 있을지 여부가 지금 한미 간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 있는 셈이다.
‘농축 권한’을 얻으면 바로 공장을 지을 수 있을까
미국과 협상이 타결돼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 범위가 확대된다고 해도 다음 날 국내에 농축공장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업시설을 어디에 지을 것인지부터 시설 건설과 운영비용, 필요한 기술과 장비 확보, IAEA 사찰과 안전조치, 국내 인허가, 주민 수용성까지 넘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남는다.
한국이 농축할 수 있게 되는 것과 한국이 직접 농축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프랑스 오라노와 영국·네덜란드·독일계 우렌코, 미국 등은 이미 대규모 농축시설을 운영하거나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한국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별도의 상업 농축시설을 갖추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여러 국가와 장기계약을 맺어 공급망을 분산하는 것이 나은지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
‘할 수 있느냐’ 다음에는 결국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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