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 아래 가장 이른 건물 흔적…사찰 조성 전 10여 동 확인 7세기 후반 건물군 다시 들어서…동탑 아래에서도 선대 유구 발견 8세기 후반 금당·쌍탑 갖춘 사찰로 재편 춘양교 남쪽에서도 같은 시기 건물 집중…월성 남쪽 공간 변화 가능성 경주 인왕동사지 발굴조사 현장. 가장 아래층의 건물지11 온통기초와 그 위 건물지10의 초석 적심, 후대 금당지 초석 적심이 한 자리에서 겹쳐 확인됐다. 절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곳에 여러 차례 건물이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2026 경주 인왕동사지 학술대회 자료집 경주 인왕동사지를 발굴하던 조사단은 지금 보이는 절보다 먼저 이 자리를 차지했던 건물들을 만났다. 금당 아래에서 건물이 나왔고, 그 건물 아래에는 더 오래된 기초가 있었다. 동쪽 석탑 아래에서도 탑보다 먼저 지어진 건물이 확인됐다. 한때 이름을 ‘인용사’라고 여겼던 절터를 파 내려가자, 사찰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의 공간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발굴조사 결과 연구자들은 인왕동사지의 건물 흔적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눈다. 가장 오래된 제1기, 사찰이 들어서기 전 또 한 차례 건물군이 조성된 제2기, 그리고 금당과 쌍탑·강당·회랑을 갖춘 제3기다.
1909년 일본인 연구자들이 조사한 경주 서악동 ‘석침총’ 재발굴 당시 놓친 봉분·무덤길·제사 흔적까지 현대 고고학으로 다시 확인 일본 도쿄대에 남아 있는 1909년 출토품도 함께 조사 1909년 일본인 연구자들이 조사할 당시 촬영한 경주 서악동 석침총의 돌방 내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117년 전 한 차례 발굴된 신라 무덤을 다시 파본다. 경주 서악동에 있는 ‘석침총(石枕塚)’이다. 이름부터 조금 낯설다. 무덤 안에서 사람의 머리를 받치는 돌베개, 석침(石枕)이 발견돼 붙은 이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09년 일본인 연구자들이 조사했던 석침총을 다시 발굴한다. 이미 한 번 파본 무덤을 왜 11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조사하는 것일까. 답은 당시의 발굴 기록에 있다. 1909년 조사에서는 돌방과 주검을 놓았던 시상(屍床), 석침 등이 확인됐다. 하지만 정식 발굴보고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것도 일부 사진과 도면, 짤막한 보고문 정도다. 당시 조사와 기록 방식으로는 무덤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국립경주박물관의 설명이다.